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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어쩌다 보니, 백패커스 호스텔에 반 년이나 살았네." - 1탄.

by 달B 2024. 2. 14.

나는 2022년 8월부터 반년 동안 'Woopi Backpackers'에 살게 되었다. 첫 번째 포스팅에서 언급했듯, 나는 특정한 워킹 홀리데이 목적이 없었다. 돈, 영어, 친구. 보통 이 세 가지를 목표로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의 목적은 '자연 속에서의 칡거'였다ㅋㅋㅋ. 빽빽이 들어찬 건물들과 어딜 가도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지쳤었던 나의 목적 '칡거'를 이루기 위해 호주로 오게 되었고, 차 없이 갈 수 있는 시골 지역 중에 숙소가 가장 저렴한 곳을 검색하다 보니 '울굴가'라는 마을로 오게 되었다.

 

 '울굴가(Woolgoolga)'는 호주 NSW주, 동쪽 해안가 쪽에 위치한 예쁘고 작은 시골 마을이다. 그런데, 작은 시골마을이라 해도, 구성이 아주 알차다. 호주의 대표 슈퍼마켓 'Woolworth' (울리스라고 부름) 1개가 있고,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들과 전원주택, 예쁜 바다로 둘러싸인 곳이다.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도시 구경 1도 안 하고 바로 '울굴가'로 와서 반년 간 머무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게 내가 도착한 8월은 블루베리 피킹 시즌이었다. 블루베리를 따는 것 말고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고, 구직도 와서 시작할 생각이었다.

 

 백패커스에 도착한 첫날은 한밤중이었고, 워낙 험난한 날이었던지라, (지난 포스팅 6 참고)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이튿날, 드디어 제대로 호주에서 생활을 시작한다는 두려움과 설렘에 괜히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이튿날, 눈 뜨자마자 같은 방 안에 있는 5명의 여자애들과 인사를 했다. 국적은 각각 아르헨티나 1명, 스페인 2명, 일본인 2명이었다. 방은 냉난방이 제공(하지만 밤에만 제공..^^)되어 일주일에 170$(현재는 180$) 이고, 여자 6인실이었다. 움직일 공간도 많지 않은 작은 방에 이층 침대 3대가 빈틈없이 'ㄱ'자 형태로 붙어있었다. 그래도 침대 퀄리티가 싸구려 철제가 아니라 나무로 되어 있었고, 전부 벽에 붙어있는 데다가 커튼으로 가릴 수 있었다. 이 작은 커튼 쪼가리가 이 백패커스에 머무르는 약 50명의 젊은이들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ㅋㅋㅋㅋ (그래도 있는 게 어디야?). 나는 생리 전이 되면 내성적으로 변하고, 혼자만의 공간이 꼭 필요하다. 고로, 이 커튼이 없었더라면 절대 이곳에서 오래 있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아무튼, 여럿이 생활하다 보니 혼자 있고 싶을 때에는 커튼이 '조금' 벌어지는 것도 진저리 나게 거슬렸다. (이층 침대에선 애들 머리 보이고, 일층 침대에선 애들 다리 보이고, 괜히 지나다닐 때마다 신경 쓰이고..). 그래서 기어이 그 얇은 커튼 천 쪼가리를 빨래집게로 집어놨다. 이것도 모자라서 발과 머리 쪽에 생기는 틈새에도 옷을 걸고, 수건도 널어놓고, 팬티도 걸고 별 짓을 다해서 나의 '침대쪼가리 프라이버시'를 사수했다. (슬프게도, 사진을 올리려 했는데, 휴대폰 바다에 빠뜨린 후로 다 잃어버렸음.. 추후 찾으면 업로드 예정). 그리고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벽에 고정된 나무선반 6칸이 있어 6명이 사용했다. 선반 위의 공간도 6등분 해서 화장품 올려놓고 사용했다. 내가 머무른 방 컨디션은 이 정도 얘기해야겠다.

 

이제, 왜 이 '우피 백패커스'에 오래 있게 되었고, 전체적으로 어땠는지 말해보려 함!

 

 사실 처음에는 이 호스텔에 오래 있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무슨 '동물의 왕국'의 '한정판 파티'가 맨날 벌어지는 데다, 매일 뉴페이스를 봐야 하고, 샤워할 때마다 샤워도구 들고 다녀야 하고, 바퀴벌레는 아무렇지도 않게 익숙해져야 하고, 멀쩡한 프라이팬을 쓰는 건 기대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 처음엔 그냥 가장 저렴해서 왔을 뿐이었고, 셰어하우스를 구하기 전까지만 있을 생각이었다. 우선, 한국에서 미리 2박을 예약했다. 도착해 보니 한국인은 나까지 총 세명이었다. 일본인이 절반 이상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유러피안과 남미계열 친구들이 많았고, 그 외에는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있었다. 그 외의 아시아인, 흑인, 무슬림은 거의 못 봤고, 오더라도 짧게 있다 나갔다. 쉽게 말하면, 장기 투숙하는 친구들은 '일본인+남미+유러피안+기타(한국, 인도네시아)'와 같이 구성되었다. 이중 열에 아홉은 'Picker(픽커, 과일 따는 사람을 일컬음)'였다. 그중에서도 많은 친구들이 'Corindi'에 위치한 'Costa(코스타)'라는 큰 농장기업에 소속되어 블루베리, 라즈베리를 땄다. 코스타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은 주변 개인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일하거나, 식당에서 일하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서 돈을 벌어 이곳으로 휴가를 오는 친구들이었다. 백패커스에 오래 머무른 친구들이니만큼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이 많았다. 또는, 내향적이어도 이곳에 정이 들어 워킹 홀리데이 내내 이곳을 재방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끔은 한국인들이 투숙하러 왔는데, 대부분 재방문이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 거의 셰어하우스를 구해서 나갔다. (여기 어떻게 살아, '기 빨려...'라고 하더라).

 

" 그래서, 2박만 예약했다면서, 어떻게 된 건가? " 하면은,,

 

 예약한 이틀이 지나고, 셰어하우스를 보러 갔지만 맘에 들지 않았다. 사실 그럭저럭 살면 살 수 있는 정도였는데, 왠지 마음이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난 외로웠나 보다. 그 길로 호스텔로 돌아와 일주일을 연장했다. 그 연장한 일주일 동안 '그래도 해외 왔는데 사람들하고 인사는 하자, 바보처럼 보여도 뭐 잃을 게 있나?' 하는 마음으로 호스텔 내의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간단한 대화를 건넸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 고맙게도 나에 대해 관심을 보여줬고, 호스텔 뒤편 바다에서 캠프파이어를 한다며 초대해 줬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이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조금씩 말을 붙이며 서서히 친해졌다.

 

처음 보는 외국인하고 무슨 얘길 그렇게 하냐고?

 

 음, 제일 처음에는 '야, 난 사실 여기 이틀만 예약했고, 셰어하우스에 가고 싶은데 혹시 뭐 아는 거 있니? 너는 왜 셰어하우스 안 가고 여기에 묶고 있니?'를 많이 물어봤었다. 또, 얘기하다가 중간중간에 블루베리 농장에 취직하려고 알아보는 중이라고 어필했다. 그랬더니 그중 두 명의 친구들이 '야, 얘 코리아에서 왔는데, 블루베리 따고 싶대. 너 000에서 일하면 얘 좀 데려가' 하는 식으로, 농장을 소개해줬고, 이틀 만에 개인 농장으로 블루베리를 따러가게 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개인이 운영하는 블루베리 농장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때려치우고도 싶었지만, 큰 농장(코스타)에 들어가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했으므로, 일단은 개인 농장에서 일을 했고, 호스텔 애들하고도 친해졌다. 그렇게 2+7일, 9일이 지났다. 당연히 일주일을 더 연장했다. 그렇게 1달쯤 지난 후, '아 그냥 여기 있자. 난 여기가 좋다' 하고 눌러앉게 되었다. 훗.

 

왼쪽이 내 방이고, 이 날은 내 마지막 날. 내 캐리어 짐 싸는 꼴이 영 못미더웠던 캐나다, 일본, 독일 친구들. 날 보더니, 그냥 저기 가서 쉬고 있으면 알아서 해준다고 함. <니코, 아카리, 미즈호, 프란스, 마나, 저스틴>. 그리운 날들 ㅠㅠ

 

여기까지가 제가 반년 살았던, 애정하는 'Woolgoolga'라는 시골마을과, 'Woopi Backpackers(우피 백패커스)'의 초반부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저랑 함께했던 많은 친구들이 비자가 끝나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다시 보기 어려워졌지만, 제 마음속에 항상 남아있을 소중한 시간들을 함께해 줘서 항상 너무나도 고맙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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