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물렀던 곳은 '울굴가'에 위치한 '우피 백패커스 호스텔'이다. 지난 글에서는 어떻게 해서 호스텔에 오게 되었는지, 내 방이 어땠는지,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간단한 이야기를 했었다. 이번에는 좀 더 개인적으로 느꼈던 이야기를 써본다.
우선, 사람 간의 강한 유대와 연결감이 있었다. 우리는 다 같은 외국인 노동자. 고로, 누가 더 낫고 별로고 하는 게 없었다. 새벽에는 다 같이 꼬질한 모습으로 농장에 출근해서 블루베리를 따고, 못 따는 친구들이 있으면 서로 도와줬다. 서로 땀 뻘뻘 흘리며 햇볕 아래서 농작물을 수확하고, 일이 끝나면 같이 해변에 가서 쉬었다. 하이시즌에는 바빠서 일을 9~10시간 할 때도 있지만, 하이시즌을 제외하고는 8시간 이내로 일을 하는 날이 많았다. 그렇기에 아침 6시쯤 일을 시작하면 보통 오후부터는 자유시간이기에, 공동부엌에 모여서 각자 요리하면서 수다 떨고, 또 같은 테이블에 앉아 점심, 저녁을 먹고 어울렸다. 사실 공동부엌이 더럽고 바퀴벌레도 많지만, 나름 직원들이 신경 써서 매일 청소를 했다. 사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 개인 가정집만큼 깨끗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니, 모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요리 도구도 웬만한 건 다 갖춰져 있지만, 코팅이 벗겨지지 않은 걸 찾기가 힘들었다. 냉장고 공간과 식료품박스도 협소해서 항상 공간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워낙 다들 친하고 항상 웃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니까 열악한 환경이 덜 느껴졌었다. 이 층에는 공용공간이 있는데, 거기서 애들끼리 매트 펴놓고 스트레칭도 하고, 운동도 하고, 유튜브 영상 보면서 동작 따라 하고, 둘러앉아 수다 떨고, 뜨개질하고, 캐리어 짐도 싸고 별별 잡다한 것들을 하면서 놀았다. 샤워실에 가도 노래 부르는 애들이 종종 있었고, 나중엔 누가 부르는지도 알 수 있었다. 주말이면 차 3~4대로 다 같이 떼거지로 산, 바다, 강, 축제, 쇼핑도 떠들썩하게 다녔다.
물론, 개인 공간이 없다는 건 스트레스가 컸다. 일하는 시간이 다르면 먼저 일어나서 출근하는 친구들의 발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게 될 때도 있었고, 친구들의 알람소리 때문에 눈 뜬 적도 수없이 많다. 생리 전이면 친구들이 밤늦게 파티하는 소리나 담배냄새가 짜증 날 때도 많았다. 그리고 내 물건이나 음식들을 매주 청소하는 전날에 맞춰 옮기거나 정리해야 하는 것도, 샤워하러 갈 때 항상 바구니 들고 다니는 것도 귀찮았다. 또, 내가 있던 방은 여자 6인실이라 그나마 조용했지만, 가끔 8인실 친구들이 나한테 와서 '야스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라는 불평을 하기도 했다. 프라이버시란 없었다. ㅋㅋㅋ 이런 치명적인 단점들도 분명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토종 한국인이고, 20살 때부터 집을 나와서 혼자 자취를 했기 때문에 개인공간이 아주 익숙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백패커스에서 반년이나 살고 나니 감회가 새롭다. 여기 살기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백패커스에 대한 이미지는 '낯선 사람들하고 어색하긴 한데, 돈 아끼려고 머무는 곳', 또는 '백인 애들 어울리는 곳' 정도였다. 친구 사귈 거라는 기대도 전혀 없이 왔었다. 그런데, 내가 여기 머물렀던 시기에 운이 좋게도, 인종의 비율도 잘 맞고, 분위기도 좋았다.
물론, 분명 예전에는 철저하게, '그래도 내 방은 있어야지, 그렇게 어떻게 살아 더럽게'라는 생각이 있었다. 서양인들이 왜 그렇게 백패커스에 환장을 하는지 그 감성도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었다. '친해봤자 얼마나 친하다고, 다 그냥 유흥하러 가는 거 아니야?'라든지, '백인 문화'라는 편견도 있었다. 그렇게 내 세상에 갇혀, 대학 졸업 이후에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외롭지만 사람을 만나려면 이유와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딱히 그렇게 노력을 할 만큼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학교 다니던 시절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친구를 사귀는 게 정말 어렵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랬던 내가 이곳에 와서 여러 명의 다양한 사람들과 깊게 연결되는 경험을 한 것은, 내 인생에 있어 대단한 행운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감사한 친구들 덕분에 외롭지 않게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시작했던 건 물론,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추억들도 많이 남았고, 영어로 말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없어졌다. 그리고 위생관념에 대해 관대해져서 어디서든 잘 적응할 수 있게 된 건 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세컨드 비자를 얻은 이후, 우피백패커스를 떠나게 되었다. 떠난 뒤로도, 친한 친구들이 어디 지역에 있는지 서로 알고 연락하며, 아직도 근처에 가게 되면 꼭 만나서 밥이라도 먹고 있다. 비록 지금은 새로운 목표가 생겨서 다른 지역에서 일을 찾고 있지만, 아직도 그 시간들이 가끔씩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라는 뻔한 말, 공동체의식이라는 말, 그런 것들이 진짜 와닿았고, 가치관이 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로, 고마워요 다들. 지구별 어딘가에서 다들 행복한 삶 살자고.
부디, 좀 더 많은 곳에 이런 공간과 상황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사람이 사람과 연결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