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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초보 픽커의 블루베리, 라즈베리 농장 경험담

by 달B 2024. 2. 16.

 호주에 가자마자 개인이 운영하는 블루베리 농장에 가서 일을 했다. 몇 군데 옮겨 다니다가 대기업 '코스타'라는 곳에 들어가서 라즈베리를 땄다. 그러다가 운 좋게도 중간에 3주 만에 팩킹쉐드에 자리가 나서, '코스타 블루베리 팩킹쉐드'에 '블루베리 QA(품질검사)' 포지션으로 들어가서 일을 했다. 정리하면, '블루베리 픽킹' - '라즈베리 픽킹' - '블루베리 QA' 순서로 일을 하며 87일의 페이슬립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잠깐, 세컨드 비자 얻으려면 88일 아니냐?"

 응. 그대 말이 맞다. 88일이 맞는데, 개인 사정이 있어 어이없게도 딱 87일 채우고 그만뒀다. (그냥 하루만 더 있을걸.) 그래서, 나머지 1일은 몇 개월 뒤에 다른 회사에서 채웠다. 이 이야기는 또 따로 나중에 할 예정. 이 87일 사건 이후로, 백패커스 친구들이 나를 이름 대신 '헤이, 에이티세븐데이스~'라고 불렀다. ^^

 

자, 다시 본론인 초보 픽커의 첫 농장경력들로 돌아가보겠다.

 

1. 개인 블루베리 농장

 처음에는 인디팜(인도인이 주인이면 인디팜, 호주인이 주인이면 오지팜, 한국인이 주인이면 한인팜) 몇 군데에 가서 일을 했다. '시간당 얼마'를 주는 '아월리 페이'가 아니라, '과일 단가를 정해놓고, 수확량만큼 돈을 주는 방식'을 뜻하는 '피스레잇'으로 일을 했다. 처음부터 잘 따는 한국인들이 그렇게 많다는데, 그 한국인이 나는 아니다. 한 달 정도는 팔때기 떨어져라 따는데도 느려서 호주 농장 최저시급(2022년 기준 25.41$, 한화 약 21,500원) 보다도 못 벌었다. 게다가, 내가 일을 시작한 8월은 블루베리 시즌 극 초반이다. 따라서 출근날도 일주일에 3~5일밖에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비 오는 날은 일이 없어서 돈은 참 못 벌었다. 한 주에 600~700불 정도 벌었다. '그래도 한국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번다.'라고 위안 삼으며 픽킹 실력을 업그레이드하려고 애쓰던 게 기억난다. 사실, 블루베리를 따는 건 어렵지 않다. 빨리 따는 게 어려울 뿐. 블루베리를 따는 사람들은 고인 물이 특히나 많았다. 도저히 그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보고 있자니 감탄사가 나오고, '아니, 저 사람은 탈곡기가 따로 없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인간 블루베리 탈곡기' 들은 자기 몫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막판에는 내가 못 끝낸 구역까지 블루베리를 싹 다 쓸어서, 내가 벌어야 할 돈도 싹 쓸어가곤 했다ㅋㅋㅋ. 결론은, 어느 개인 농장을 가든, 못 따는 사람은 최저시급도 못 벌고, 잘 따는 사람(인간 블루베리 탈곡기)은 어디 이상한 농장에 데려다 놔도 시간당 40~50$ 을 벌어간다. 물론 나는 전자였지만..

 하지만, 자연 속에서 좋은 공기 마시며 단순한 삶을 살아보자고 온 나에게, 일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눈치 주는 사람도 없고, 나가기 싫은 날은 안 나가도 되고, 일 쉽고. 또, 책임이 뒤따르는 일이 아니다 보니, 일하고 집에 오면 편하게 걱정 없이 쉴 수 있어서 좋았다. 돈은 별로 못 벌었지만, 한국에서부터 '블루베리 잘 못 따면, 많이 먹고 오면 되지. 먹어서 남기지 뭐.'라는 생각을 했었기에, 블루베리 많이 먹으면서 힐링했다ㅋㅋㅋ. 하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블루베리로 아침 열심히 먹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와서 "맛있냐? 그 품종 맛이 어때?" 물어보셨다. 나는 "응 이 품종 괜찮네. 엄청 맛있네. 커다래서 먹다 보면 배불러. 그러니까, 너도 블루베리 잘 못 따면, 그냥 나처럼 많이 먹어. 여기 블루베리가 다른 데보다 맛이 괜찮네."라고 답했다. 근데 알고 보니 그 아저씨가 농장주.ㅋㅋㅋ. (같이 웃어서 농장주인줄 몰랐다. 다행히도 블루베리 먹는 걸로 별로 신경 안 쓰더라. 다행이다 ^^;;)

 참고로, 개인 농장 중에 어떤 농장이 일하기 좋은 곳이냐면, 내 생각엔 '미들 픽커가 돈을 많이 버는 곳', 그리고 '나무가 평평한 지대에 있는 곳',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해, 단가가 나쁘고, 나무가 언덕에 있어 이동하기 나쁘고, 야외에 그대로 농장이 노출되어 병충해가 많은 농장은 일도 힘들고 돈이 안된다). 또, 큰 농장에서만 일해도 되지만, 작은 농장 2~3개에서 번갈아 출근하는 방법도 있다.

 

 

2. '코스타' 라즈베리 농장 픽킹 후기

 개인 농장에서 일하다가, 뭐 같은 흑인 남자가 쫓아다니는 바람에 다 그만뒀다. 아무래도 '농장계의 삼성, 코스타'에 가면 비자 얻기도 수월할 것 같아서 그쪽으로 옮겨가기로 결심했다. 참고로, 코스타 베리 픽커 지원은 시즌 내에 아래 온라인 링크에서 할 수 있다. 블루베리, 라즈베리, 블랙베리는 시즌이 다 달라서, 그 시즌에 맞춰 지원해야 한다. 픽킹 말고 팩킹쉐드에 지원해도 되고, 농장 유지보수하는 팀에 지원해도 된다. 다만, 차가 없으면 픽킹으로 시작해야 차를 얻어 탈 사람을 구하기가 쉽다. 코스타 베리 지원링크 : https://costagroup.currentjobs.co/Job

 온라인으로 지원한 뒤, 답장과 출근날짜를 일주일 내로 답변받았다. 그렇게 코스타에 입사하여 라즈베리 픽킹을 시작했다. 이때 꿀팁은, 보통 백패커스팀에 초보 픽커들이 많고, 차도 구하기 쉬우니, 차가 없거나 친구를 사귀고 싶으면, 출근한 첫날 슈퍼바이저한테  '백패커스 팀에 배치해 주세요.'라고 부탁하면 된다. 아쉽게도 나는 그걸 몰랐고, 백패커스 호스텔에 살면서도 그들과 동떨어진 그룹에 배치받게 되었다. 슈퍼바이저한테 차가 없다고 말하니, 인도 아주머니 '시두'에게 날 소개해 주셨다. 그래서 매일 아침, '시두'가 내가 살던 백팩커스 앞으로 픽업을 오고, 끝나고 내려줬다. (아직도 고마운 분. 그리고 그분은 탑 픽커이셨다. 시간당 40~50$을 버시고, 그 돈을 저축해서 세계여행을 다니신다고...)

 

코스타 라즈베리 농장

 

 위에 보이는 게 라즈베리 농장이다. 코스타 라즈베리 픽킹은 조금 까다로웠다. 다른 회사는 안 가봐서 모르겠는데, 라즈베리를 따기만 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위에 보이는 플라스틱 안에 소분해야 한다. 어렵진 않은데 시간을 잡아먹으니까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개인 농장에 비해 슈퍼바이저가 까다롭게 구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라즈베리 가운데에는 심 같은 게 들어있다. 그래서 살짝 힘을 주어 잡고 따야 하는데, 너무 세게 잡으면 과일이 물러지기 때문에 적당한 요령이 필요하다. 또, 라즈베리 나무에는 가시가 있어, 제공되는 라텍스장갑, 면장갑 이렇게 두 겹을 끼고 일을 했다.

 그리고, 라즈베리는 아주 맛있다. 난 블루베리보다 싱싱한 라즈베리가 더 맛있는 것 같다. 마트에서는 보기 힘든 그런 좋은 품종의 싱싱한 라즈베리를 즉석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게 행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맛있게 아주 잘 먹었다. 일 끝나고 돌아올 때도 항상 챙겨 와서 요구르트랑도 갈아먹고, 잼도 만들어 먹고, 나눠도 먹고, 요모조모 잘 먹었다. ^^

 

 일할 때 힘들었던 점도 있었다. 나는 오래 서있으면 허리가 아픈데, 버킷을 허리에 벨트를 매고 하다 보니, 허리가 너무 아팠다. 생리 전에는 너무 아파서 진통제 없이 일하기 어려웠다. 또, 가끔 벨트에서 버킷이 빠지면 어렵게 모은 라즈베리가 다 쏟아져서 심적으로 괴로웠다. 또, 라즈베리 나무에는 가끔 노란 가루가 있는데, 특히 그런 나무들만 모여있는 구역에서 일하는 날에는 눈이 너무 따가웠다. 바람이라도 불면 노란 가루가 펄펄 날렸다. (그럴 때마다 파워볼 당첨되어 추노 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또, 비가 오거나 물이 고여있으면 바닥이 물렁물렁해서 넘어진 적도 있었다. 신발도 더러워지고, 뭣보다 기껏 채운 버킷도 쏟아졌다. 정말이지, 그럴 때마다 간절하게 추노 하고 싶었다.

 기타 기억나는 건, 농장 규모가 정말 컸다. 구역마다 차로 이동해야 했고, 거의 매일 다른 구역으로 이동해서 땄다. 이때, 어떤 구역은 나무 품종이 아주 좋아서 과일을 따기가 쉬웠고, 대신 단가는 아주 낮았다. 반대의 경우, 거의 다 죽어가는 라즈베리 나무라면 시급제로 바꿔서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고, 그보다 조금 나은 구역은 단가를 높이 쳐줬다.

애증의 라즈베리

 

 전체적으로, 블루베리가 난이도는 더 쉽지만, 요령이 생기면 라즈베리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코스타에서 일하는 것이 개인 농장에 비교하여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장점은, 장갑이나 화장실이나 물 같은 기본적인 도구나 시설이 갖춰져 있다는 것, 페이슬립 모으기 쉽다는 것, 최저시급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저시급보다 느린 속도로 따면 경고장 받고, 3번 받으면 해고). 반면, 단점도 있다. 과일을 빠르게 잘 따는 사람들의 경우, 과일 단가를 더 잘 쳐주는 개인 농장이 낫다. 또, 못 따는 사람들은 경고장 안 받으려고 애써야 한다. 즉, 슈퍼바이저의 압박이 있다. (나도 이 압박감이 싫어서 아월리 페이를 주는 크루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자리가 꽉 차서 못 들어갔었다.) 결국, 코스타에서 라즈베리를 딴지 1달 정도 되었을 때, 요령이 생겨 최저시급보다 아주 조금 더 벌었다. 그래봤자 한 주에 850불, 6일 일한 주는 1000불 정도 벌었지만.

 

 

3. 코스타 라즈베리, 블루베리 아월리 픽킹 후기

 운이 좋게도 한 5번 정도, 라즈베리와 블루베리 픽킹 아월리 팀에 출근한 적이 있었다. 단언컨대, 코스타 아월리 팀이 가장 쉽다. 잘 따는 사람들은 절대 안 오겠지만, 초보 픽커들은 천천히 일해도 되는 이 아월리 크루가 단연 최고이다. 하지만, 아월리 크루는 언제 없어질지도 모르고, 잠깐 생겼다 마는 경우도 많고, 자리도 잘 나지 않는다.. 또 일을 오래 안 시키므로 돈을 못 번다.. 그냥 돈 적게 벌어도 편하게 일하고 싶으면 좋은 것 같다.

 

4. 결론

 

 베리 잘 딸 자신 있으면 개인 농장에서 일하자. 데이오프도 마음대로 내고, 내 멋대로 일할 수 있고, 최저시급을 안주는 곳이 많으니 눈치 볼 필요도 없으니 참 편하고 좋다. 오히려, 코스타에서 일하는 것보다 개인 농장에서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다. 왜? 이유인즉슨, 코스타는 품종 개량을 잘해서 과일이 크고 좋아서 과일 단가를 낮게 책정한다. 또, 초보 픽커들한테도 최저시급을 보장해주다 보니, 상대적으로 탑픽커에게 돌아갈 이익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작물이든지 간에 픽커를 하기로 결정했으면, 처음에 못 따는 건 감수 하더라도 오래 남아서 연습하자. 결국에는 픽킹 실력은 연습하면 는다. 개인차가 있지만. (백패커스에서 베리만 5년 따는 친구도 봤다. 이런 친구들은 베리 시즌을 따라 이동 노선도 정해져 있다).

 하지만 나는 야외에서 일하는 게 너무 질려서, 앞으로 피킹은 급하지 않으면 하지 않을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초보 픽커는 잘 먹는 게 남는 거라는 거!! 블루베리가 얼마나 몸에 좋은데. 항산화 작용에도 좋고, 눈에도 좋다고 하니 정말 많이 먹었고, 많이 먹어서 행복했다 ^^.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그렇게 먹고 안 질리냐고 물어봤는데, 안 질린다. 블루베리 사랑해요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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