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호주에서 2년 차 워킹 홀리데이 중인 달비입니다.
우스갯소리로, '농장계의 삼성'이라고 불리는 '코스타'에서 픽커로 일하다가, 운 좋게(혹은 운이 나빠서) 팩킹쉐드로 옮겨갔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1. 어떻게 들어갔나? - 라즈베리 농장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이 계기로 들어감.
불미스러운 사건이란, 성희롱 및 성추행 사건. 굳이 떠올리고 싶진 않지만 기록을 위해 남겨본다.
지난 글(11번 참고)에서 말했듯, 나는 혼자 '로컬 크루'에 들어갔다. '로컬 크루'란, 쉽게 말해 베리만 10년 이상 딴 지역 로컬 픽커들이 모인 팀을 말한다. (한마디로 고인 물 집단). 호주 시민권자 아니면, 베리 시즌에 맞춰 매년 일하러 호주로 오는 '피지 아일랜드', '패시픽 아일랜드' 등등의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들어간 이 크루도 마찬가지였다. 호주 시민권자인 인도인들, 근처 섬나라에서 매년 일하러 오는 분들로만 구성된 크루였다. 인도인 아주머니 한 분이 감사하게도 차를 태워주셨고, 라즈베리 잘 따는 방법도 알려주셨다. 하지만, 나는 백패커스 크루로 돌아가고 싶었다. 영어도 안 통하고 친구도 없어서 외로웠다. 외로워서, 오직 라즈베리를 빨리 따겠단 일념으로 집중해서 일만 했다. 그 와중에, 오랜만에 새로운 워커가 들어와서 신기했는지, 아니면 외모가 달라서 신기했는지, 나에게 와서 사진 찍자고 하거나, 짧게 말을 붙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변태는 어떻게 만났냐고? 뭐 별거 없다. 인도인 유부남 한 명이 계속 나한테 뭐라고 강한 인도억양의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말을 붙이길래 그냥 예의차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어줬다. 근데, 사람이 주변에 없을 때마다 나한테 와서 자꾸 기분 나쁜 말을 하고, 가까이 접근했다. 그럴 때마다, 그냥 못 알아들은 척하고 자리를 피했다. (똥은 피하는 게 답이니까.)
그런데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차에 기대어 서있는데 옆에 다가와서 뭐라 뭐라 말을 하더니, 자연스럽게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마음 같아선 욕을 한 바가지 쓰고 싶은데 쓸 수가 없으니 답답할 따름). 바로 'What+더+Fxxx!'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러자, 그 'Mi Chin Shake it'는 어이없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 하는 게 아닌가?.. 마치 '응? 왜 이래 우리 사이에? 너도 원하는 거 아니었어?'라는 듯한 표정으로...
이 상황이 되자, 난 '응. 더 이상 모르겠고, 바로 신고 간다' 하고 마음을 먹었다. 우선, 바로 나 차 태워다 주던 아주머니한테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음날부터 안 나오겠다고 미리 알렸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 안 하고 코스타 인사관리팀 총책임자한테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 이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이틀 뒤인가, 인사관리팀 사람 2명이 내가 머무르던 호스텔로 사건 진상 조사를 위해 찾아왔다. 그리고 어떤 처벌을 원하는지 내게 물었다. 나는 담당자들에게 대략 이렇게 답했다.
'회사에서 성추행이 일어나면 이곳으로 보고하라고 교육하지 않았냐? 나는 그 절차대로 보고한 것뿐이다. 그리고, 당연히 처벌에 대한 규정이 이미 있는 줄 알았는데, 나에게 어떤 처벌을 원하는지 물으니 당황스럽다. 그러니, 처벌에 관한 것은 알아서 하시고, 나는 그 크루에서 일할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
그랬더니, 담당자들이 '우선 내일부터 백패커스 크루에서 일하고,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알려달라'라고 했다. 나는 가고 싶은 곳 생각해 보고 연락하겠다며 만남을 마무리했다. 그들의 대처가 속 시원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더 이상 그 상황에 처할 위험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2. 다음 날 출근한 백패커스 크루에서 우연히 정보를 얻다.
그렇게 다음날, 임시로 백패커스 크루에서 일을 했다. 아는 얼굴들이 많고, 다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온 사람들이어서 또래도 많아서 분위기가 좋았다. 친구들이 어떻게 여기로 옮기게 되었냐고 물어보길래 대충 사실대로 얘기했다. 그런데, 그 얘기를 잠자코 듣던 중국인 한 명이 '너 그럼 팩킹쉐드 QA 가보는 거 어때? 지금 자리 났다는데?'라고 제안했다.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블루베리 팩킹쉐드에 가면, 블루베리 품질검사하는 사람 딱 2~3명 뽑는데 마침 빈자리가 있으니 우선 가서 일하면서 알아보라'라고 했다. 더운 날씨를 싫어하고, 실내근무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귀가 솔깃했다. 그래서 바로 담당자한테 전화해서 '저 팩킹쉐드로 갈게요'라고 했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그 사건 이후로 라즈베리를 쳐다보기도 싫어진 상태였기에, 쉽게 마음을 정했다.
(고마워요.. 이름 기억 안 나는 중국분. 덕분에 팩킹쉐드 가서 일했답니다!)

3. 코스타 블루베리 팩킹쉐드 후기
그렇게 블루베리 팩킹쉐드로 옮겨간 나는 QA로 2달 정도를 일했다.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은근히 기억할게 많았고,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뭔가 잘못됐다' 싶으면 슈퍼바이저, 워커들이 가장 자주 찾는 게 QA였다. 샌드위치랄까? 팩킹쉐드 안은 5~10도 정도로 유지되어 추웠다. 그래도 비바람이나 강한 햇살이나 찌는 더위보다는 훨씬 좋았다. 하루 6시간에서 10시간 사이로 일했고, 하이시즌에는 나까지 총 4명의 블루베리 QA가 있었다. 블루베리 샘플을 검사하고 아이패드에 자료를 입력하고, 그 외에 말로 설명하기엔 어려운 자질구레한 일들을 담당했다. (별로였던 건, 사실상 뭔가 잘못되면 QA 탓인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
QA의 좋은 점은 환경이 그나마 쾌적하고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고, 나쁜 점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에 귀가 너무 아파서 귀마개를 항상 착용해야 하며,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다는 것이었다. 또, 농장에서와 달리 팩킹쉐드는 점심시간에 전자레인지와 정수기 물, 냉장고, 식탁 등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단조롭게 한 가지 일만 반복하는 일에 비해, 업무 자체는 좋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절대로 '꿀잡'은 아니다. 춥고 시끄러운 곳에 장시간 서서 일해야 하고, 잊어버리거나 실수를 하면 여기저기서 질타를 받는 게 상당히 피곤하다.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또, 시즌 중간에 인도인 동료가 2명 들어왔는데, 아무리 같은 것을 알려줘도 계속 잊어버리고, 이상하게 자기 방식을 고집하고, 신경질적이라서 너무나 힘들었다. 이 얘기는 길게 하면 입만 아플 것 같아서 생략. 아무튼 바쁜 라인이 있고, 쉬운 라인이 있는데, 총담당자가 계속해서 일 잘하는 나만 바쁜 라인에 세우고, 약속한 휴가도 지키지 않고, 근무표도 불공평하게 짜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쌓였었다. 결국, 담당자의 '지속적인 약속 불이행'과 무례한 발언으로 인해 팩킹쉐드를 그만두게 되었다.
4. 느낀 점 및 교훈
인도남자라고 다 그런 인간은 아니지만, 일단 내 직감이 '아니다'라고 하면, 바로 피하자. (단, 인종차별은 하지 말자. 나도 외국인인걸..) 그리고,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일하고 있다면,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는 호주 방식으로 'Easy going' 한 마인드를 갖고 일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어차피 워킹홀리데이로 비자 얻는 일은 대부분 노동력을 요구하는 일인데, 굳이 본인 몸 상해가면서 열심히 해도 그걸 알아주는 문화도 아닐뿐더러, 되려 일을 그렇게 하면 몸도 상하고, 위에서 더 피곤하고 귀찮은 일만 더 준다. 추가 페이 없이.. 일 열심히 하는 것보다도, 차라리 사회성을 길러서 인맥을 많이 만들어두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호주는 한국보다도 더 인맥이 크게 작용하고, 엄청 중요하다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농장에서 일할 때는 친구들이랑 일하자. 어떤 일이든 일이 훨씬 쉽게 느껴지고, 못 버티겠다가도 친구들하고 이런저런 얘기하다 보면 다시 힘이 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