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호주에는 워킹홀리데이로 온 사람들이 아주 많다. 뭐 소문으로는 2023년 하반기부터 역대급으로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숙소와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졌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물론, 아무 일이나 가리지 않고 한다면 일을 구할 수 있다. 다만, 단기 시즌으로 끝나는 일이거나, 너무 악질로 소문난 일도 많으니 잘 알아보고 해야 한다.
어쨌거나, 본론으로 돌아가서, 12~1월 사이 일자리를 못 구했던 얘길 해보겠다. 원래 11월 초에 일하기로 되어있던 그레인(쌀농장) 회사에서 갑자기 2주를 연기해 버렸다. 그래서 2주 동안 저축했던 돈으로 버티다가 11월 중순에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하필 위생관리가 개판인 곳을 가는 바람에, 몸에 병이 제대로 났다. 목소리가 안 나오고 편도가 눈에 보일 정도로 부어 침도 못 삼키고, 고열이 3일 넘게 지속되었다. 2주 동안 비가 많이 와서 고작 4번밖에 출근 못 했는데, 하도 더러운 곳이라 몸이 버텨주질 못했다. 나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던 사람들도 같은 증상을 보였다. 결국, 돈이고 뭐고, 증상이 심상치 않아서 그만두었다. 일 시작하는 거 2주 기다리고, 4일 일하고, 다시 백수가 된 셈. 정말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 포기하고, 몸이 나을 때까지 일주일을 거의 누워만 있었다.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된 후, 30곳 넘게 일자리를 지원했다. 짧게 몇 주만 하는 일보다는 그래도 몇 달간 한 곳에서 안정적인 쉬프트를 받으며 일하고 싶었고, 그래서 호주 전국 방방곡곡으로 지역 안 가리고 일자리를 알아봤다. 그런데, 연락이 정말 단 한 군데에서도 안 왔다.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호주인들은 휴가를 '미친 듯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12월 초부터 일 처리가 늦어지기 시작해서, 내가 낸 이력서는 내년에야 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냐고?
응. 정말로 담당자들이 다 휴가 갔었나 보다. 아무 연락도 못 받고 1달 넘게 쉬었다. 자동 거절메일 3건 정도는 받은 것 같다. 아무튼, 이로써 호주에서 12월에 일자리는 지원하면 불리하다는 경험치를 쌓았다.ㅋㅋㅋ 으앙.....!!!
돈 떨어져 가서 불안한 와중에, 뉴스에서는 골드코스트와 선샤인코스트로 크리스마스 휴가를 가기 위해 사람들로 꽉 찬 공항을 보여주었다. 아마 내가 연락했던 인력채용담당자들도 그 휴가 가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정말이지, 평소에도 일을 느리고 여유롭게 하는데, 휴가도 참 길게도 간다. 1달 쉬는 곳도 심심치 않게 봤다. 더 웃긴 건,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나면, 연속으로 새해기념 휴가가 이어진다 ㅋㅋㅋㅋ (가게들이 텅텅 비고, 그냥, 휴양지 아니면 사람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이 얘기임). 그러니까 혹시 이 글을 보는 워킹홀리데이 하는 분들은, 12월 초에 일자리 지원할 생각 말고 그전에 어디 미리미리 해서 크리스마스~뉴이어 시즌을 한 곳에 짱 박혀서 일하자. 하.. 한 수 배웠다....
그나저나, 생각할수록 웃기다. 호주는 대도시를 제외하면 카페도 오전영업만 하고, 식당도 3~4시에 닫고, 그나마 중국, 인도인이 운영하는 식당들은 9시 정도에 닿는다. 술집도 10시에 닫는 곳이 많다. 그리고, 휴일도 엄청 많고, 개인 사정으로 그냥 이유 없이 문 닫는 가게도 많다. 근데 워낙 가게가 없으니까, 중간 이상만 해도 장사가 잘 된다. "그렇게 살아도 먹고살 수 있어?" 하는 생각 엄청 많이 들었다. 정답은, 가능한가 보다.
심지어, 동물들도 대충 산다. 우리나라 비둘기 욕할게 아니다. 여긴 대문짝만 한 캥거루도 늘어지게 드러누워서 고개만 움직여서 풀 뜯는다. 새들도 멀쩡한 날개 안 쓰고, 이쑤시개 같은 다리로 걸어 다닌다. 사람이 근처에 지나가면 그나마 이쑤시개로 뛰어간다. 잘 안 날아다닌다. 모르겠다. 이 한가로움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뿐이다.
결론은, 아마도 난, 이런 어이없는 한가로움, 'Easy Going' 문화가 너무 좋아서 호주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