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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당신의 일기장을 훔쳐본 적이 있나요?

by 달B 2024. 2. 29.

살면서 누군가 당신의 일기장을 훔쳐본 적이 있나요?

저는 있네요. 그 얘길 해보고 싶어요.

물론, 초등학생 때, 선생님의 일기검사를 제외하고, 진짜 개인적으로 쓰는 그런 일기 말이에요.

 처음에는 엄마가 훔쳐봤어요. 동생이 알려주더군요. 엄마가 일기 보면서 웃었다고. 저는 그때 초등학교 3학년 10살이었고, 제 짝꿍을 좋아하고 있었거든요. 20년도 더 지난 아직도 그 애 이름이 생각이 날 정도로 많이 좋아했답니다. ㅋㅋ 그 애 얼굴만 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그런데 15살 이후에는 그 심장 터질 것 같은 느낌이 안 드네요. 어릴 때에만 있는 그 느낌이 그립기도 하네요. 아무튼, 그 애 이름이랑 그 애에 관해 일기장에 썼는데, 엄마가 그걸 커피 마시면서 과자를 먹으며 읽었다는 거예요. 어른이 된 지금은 엄마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저는 살면서 가장 믿은 사람에게 가장 크게 배신당한 첫 경험이었습니다. 엄마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따졌는데, 엄마는 안 봤다고 우기시다가, 결국에는 '버릇없이 소리 지르지 마라'라고 하시더군요.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냐며... 저희 엄마 사랑 넘치고 좋은 분이에요. 꼬맹이가 그런 일기 써놓은 거 보면 얼마나 귀엽겠어요. 지금은 머리로는 이해해요. 하지만, 10살 때부터 저는 저였나 봐요.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일기는 나만 볼 수 있는 글을 적는 곳이라고 했는데, 엄마가 거짓말했어. 이제 엄마도 믿을 수 없어.'라고 느꼈습니다. 하하 ^^;;;

 

 그리고, 두 번째는, 훨씬 대박입니다. 예전 남자친구가 제가 외출한 사이에 제 집에 비밀번호 치고 들어가서 제 책장을 뒤져 제 일기 3년 치를 읽었어요. 설상가상으로, 3년 전에 만났던 다른 사람과의 데이트 장면을 읽고서 그걸로 저에게 뭐라고 하더군요. 제가 이미 예전에 만난 사람이 있다고 얘기했었지만, 막상 일기를 훔쳐보니 질투가 심하게 났나 봐요. 제가 일기에 19금을 적은 것도 아닌데 말이죠. 아무튼 이미 제정신이 아니더군요. 집착이 심한 친구였어요. 안 그래도 남자 이름으로 된 전화번호를 다 지우게 했었고, 남자는 동생 말고 아무도 못 만나게 했어요. 그런 친구가 제 예전 데이트 일기를 읽었으니, 제정신일 수가 없죠. 하지만, 저도 너무 괴로웠답니다. 그 일기는 21살부터 제 일상, 제가 배우고 느낀 것들, 해왔던 것들 등등 일상을 차곡차곡 적었던 일기였습니다. 저에게는 예전에 헤어진 상대에 대한 내용이 기록된 노트가 아니라, 스스로와 대화하고 추억을 기록하던, 말 그대로 '일기' 였어요. 어쨌든, 그 일이 벌어진 날, 저는 처음으로 그 친구에게 괴물처럼 소리를 지르고 쌍욕을 했어요. 어릴 때 느꼈던 수치심을 또 느끼니 분노가 말도 못 했습니다. 그 남자는 미안하다는 말은 '곁들이듯' 하고, '일기에 적힌 예전 애인에 대해 질투가 나서 너에게 화가 난다'는 말을 더 많이 하더군요. 그래도, 제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연애를 한 남자친구여서 용서하고 싶었지만, 이 시점에서 용서가 안되더군요. 그리고 사랑보다 집착이 더 크다는 느낌 때문에 그때 떠나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독하게 마음먹고 마음을 거두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헤어질 때, 이사 가고 이름을 바꾸고, 전화번호를 바꿨어요. 저를 찾아낼까 봐도 있고,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어서도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죠? 물론, 저는 제 무의식에 '누군가가 내게 집착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강한 집착이 아니고서는 사랑을 느낄 수가 없다. 너무나 외롭다.'라는 마음도 있었다는 걸, 몇 년이 지난 후에서야 혼자 깨달았긴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전혀 몰랐어요. 그 집착이 힘들기만 했고, 제3년 치 모든 제 사적인 일기가 노출된 것도 모자라, 일일이 해명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수치심이 말도 못 했죠. 결국, 그 남자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그 일기를 태울 것을 요구했어요. 그래서 저는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질투로 괴로워하는 것보다야 그냥 한낱 추억 버리고 말지.'라는 마음으로 놀이터에 가서 일기를 불태웠답니다. 그리고, 나중에 많이 후회했네요. 

 

 아무튼, 다 오래 지난 일임에도 아직도 그 일기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 있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많은 일기를 써왔지만,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누군가 봐도 용납 가능한 수준'의 내용만 검열해서 적게 되더군요. 누가 볼 것도 아니고, 혼자 살 때조차 말이죠. 왜 이 이야기를 했냐면, 저는 무언가를 손으로 적어 내려가면서 제 스스로를 더 잘 알게 되고, 치유받고, 깨닫는 것들이 많은데, 일기 사건 이후로는 계속 검열되고 정화된 내용만 적게 되네요.

 그래서 말이죠, 저는 '더럽고 역겹고 용납되지 않는' 그런 내용을 '망설임 없이, 두려움 없이' 적을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스스로를 똑바로 마주하고 싶어요. 수치심 없이요.

 

그래서, 응원합니다. '너무나 매일같이 억압해서 이제는 잘 드러나지도 않는' 본래 진정한 모습의 나를, 당신을, 우리를 ♥

 

호주 'Toowoomba'에서 구매한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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