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6. 험난했던 첫 날의 이야기.

by 달B 2024. 2. 11.

지난 글에서는 골드코스트에서 'Woolgoolga (울굴가)'까지 어떻게 갔는지, 또 왜 울굴가로 갔는지를 다뤘었다.

But, 울굴가에서 예약한 백패커스 호스텔까지 도착하는 게 지옥 같았다. 고로 이것은 One of my 인생이야기.

 

 사건의 발단은 골드코스트 공항에서부터였다. 아니,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온 한국에서부터였다. 대충 검색한 결과로는 골드코스트 공항에서 유심카드를 판다고 하여, 공항에 내리면 그때 심카드를 구매해서 길을 찾아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해당 가게는 없어져있고, 공항 내에 그 어디에도 유심카드를 팔지 않았다. 한국에는 어딜 가도 편의점이 있지만, 호주는 그렇지 않고, 가장 가까운 유심 파는 곳을 검색해도 갈 수 없는 거리였다. 30kg 캐리어에 10kg 백팩에 무거운 요가매트에 두꺼운 옷가지까지 약 50kg의 짐은 아주 무겁게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항에서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고, 시간도 널널이 남았었다. 그래서 공항 의자에 앉아 폭풍 구글맵 검색을 시작했다. 공항에서 나가는 즉시, 나는 휴대폰도 사용 못하는 외국인 미아가 되는 셈이었다. 공항에서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또 울굴가에 내려서 숙소까지 도착예정시간과 걸어가야 할 길을 다 캡처해 놨다. 그리고 무거운 짐을 이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공항에 나서서 신호등 건너는 것부터 잘못 건너서 아주 멀리 돌아가게 되었다.. 짐이 너무 무거워서 몇 걸음 걷다가 멈추고를 반복해서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길 지나가는 아저씨 아줌마에게 물어물어 겨우 도착했다. 길어야 15분이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만 45분이 걸렸다. 지도를 켜면 방향을 알 수 있는데, 사진을 보고 가다 보니 너무 어려웠다. 주변에 건물이라 할 만한 것도 별로 없기에 더 헤맸다.

 

 그렇게 어찌어찌해서 버스에 올라 한숨 돌리고, 6시간 반이 지나 '울굴가' 정류장에 내리니, 밤 10시 반 정도가 되었다. 바깥은 아주 어둡고 겨울이라 추웠다. 50kg의 짐덩이와 함께 덩그러니 버스정류장에 내리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내가 믿을 건 휴대폰 사진에 저장된 몇 개의 사진뿐이었다. 사진에서 알아볼 수 있을만한 건물은 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Woolworth' 랑, 중간에 맥줏집 하나였고, 건물 많은 마을은 호스텔 근처에만 있었다. 전날 새벽부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계속 무거운 짐과 함께 이동했는데, 아직도 길에서 헤매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밤 10:30에 생전 처음 오는 외국 시골마을에 내려,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는 20분 거리의 길을 약 50kg의 짐을 지고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득했다.


 아무튼, 휴대폰에 저장해 놓은 사진을 보며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을 알 수 없으니 길이 정말 너무너무 헷갈렸다. 'Woolworth 옆에 있는 길로 가면 되는 거였지?' 했는데, 막상 보니까 갈림길이었고, 중간중간 건물도 없어서 제대로 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다 오르막길 언덕.

 결국 나는 50kg의 짐을 끌고 오르막 길을 2시간가량 헤매다가 돌아오고, 또다시 다른 갈림길을 갔다가 돌아오고를 반복했다. 난 길을 잃었다. 너무 힘들어서 잠깐 멈추고 하늘을 보는데, 밤하늘에 별은 나랑 상관없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별이 예쁘기도 하고, 상황이 막막하기도 해서 눈물이 났다.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이러다가는 오늘날 새겠다 싶어서, 아무나 붙잡고 길을 물어보려 했으나, 지나가는 사람마저 찾을 수가 없었다. 한국이랑 다르게 밤에는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았다. 문을 연 상점도 당연히 없고, 가로등도 듬성듬성 있어 칠흑처럼 어두운 곳도 많았다. 길을 헤매다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아, 그냥 오늘 길에서 누구한테 납치당하지 않으려면 최소한 계속 걷자. 그리고 한 길로 10분 이상 걸었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면, 되돌아가서 다른 길로도 가보자. 그 모든 길로 10분씩만 걸어보자.."였다. 군대에 가본 적은 없지만 혼자 야간 행군을 하는 느낌이었다. 결국 1시간 반을 헤매고 밤 12시가 되었을 때쯤 바닷가 소리를 들었고, '아 최소한 바다에서 누워서 노숙을 할 수는 있겠다. 그런데 추워서 입 돌아갈지도 모르겠고, 모래사장에 이 캐리어를 옮길 자신도 없으니 좀만 더 걸어보자'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그 모든 갈림길을 다 가본 뒤, 우여곡절 끝에 '우피백패커스'를 찾았다. 그런데 웬걸.. 문이 닫혀있었고, 그 주변 모든 가게와 집의 불은 다 꺼져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문 닫은 가게의 전광판 전기 흐르는 소리와 벌레소리가 잘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골드코스트 공항에서 생각한 나의 전략이었던, '정 길 못 찾으면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물어보지 뭐'는 통하지 않았다.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그 한밤중에 호스텔 닫힌 문을 계속 두드렸는데 답이 없었다. 많이 막막했다. 그래도 미친듯한 긍정으로, '적어도 바닷가에서 노숙하는 것보다는 백패커스 앞에서 노숙하는 게 나으니까 그나마 잘됐다. 혹시 안에서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니 그냥 여기 앉아서 노숙하자'라는 생각으로 50kg의 짐더미와 함께 철퍼덕 바닥에 앉았다.

 그렇게 앉아서 멍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그 닫힌 철문(새시) 사이로 사람 인기척이 들렸다. 와,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무인도에서 사람을 발견했을 때의 감정이었다 ㅠㅠ.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서 '헬로!! 헬로!! 캔유헬미?!!'를 연발했다. 근데, 안에 있는 사람은 내가 미친 사람인 줄 알았는지, 아무 대답 없이 없는 척을 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필사적으로 '저 이 백패커스 숙박 예약했는데, 지금 유심카드가 없어서 전화를 못해요. 주인분께 전달이라도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영어로 말했다. 그래도 없는 척을 끝까지 고수하던 이름 모를 그분은 어디론가 안으로 사라졌다. 인기척은 사라졌고, 하늘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근데, 3분 정도 뒤에, 다시 인기척이 아주 작게 들리길래, 'I can see you'라고 외쳤더니 안에 있는 사람이 '멈칫' 하는 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도 얼마나 무서웠을까? ㅋㅋ '나 너 보여~'라고 그 한밤중에 공포영화처럼 말한 나도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난 다시금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제발 도와주세요 휴대폰이 없어요.. 대신 전화라도 해주시면 안 되나요? 저 여기 예약했어요. 그리고 안에 계시는 거 보여요. 밤에 도착한다고 미리 연락 남겼는데 아무도 안 계시네요. 문 못 열어주시면, 주인분께 대신 연락이라도 하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계속 반복해서 말했다(그때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 남. 그때 만약 못 들어갔으면 나는 생판 외국에 처음 도착한 날에 휴대폰도 없이 50kg의 짐들과 주차장 골목에 앉아 노숙을 했어야 하는 거였다).

 나의 간곡한 호소 끝에, 안에 있는 분은 철문 가까이로 와서 내게 말을 걸었고, 드디어, 뭘 원하냐고 물었다. 그래서 했던 말을 쭉 반복했더니, 그럼 자기가 문을 열어줄 수는 없고, Sam(주인)에게 연락해 주겠다고 하고 다시 사라졌다. '다시 안 오면 나는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주인한테 연락은 해주겠지..' 하고 기다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Sam은 2층으로 샤워하러 가서 1층 로비에 아무도 없었고, 백패커스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다 2층에서 자고 있었다. 그리고 보통 그 시간에는 1층에 아무도 나오지 않는데, 내가 운이 좋아서 도와줄 사람을 만난 거였다. 아무튼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문이 열렸고, Sam은 내 캐리어 무게가 너무 무겁다며, 안에 청소년이라도 넣고 다니냐는 신경질적인 농담을 하며 방을 안내해 주었다. 방문을 여니 다 자고 있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 괜찮았다. 다 상관없었다. 나는 '살았다'라는 생각에, 심장이 쿵쾅대다가 긴장이 풀려 그대로 이층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살았다..")

 

다음날, 나를 구해줬던 그 여자애한테 말을 걸었는데, 한 2주 동안은 그 여자애가 나를 피해 다녔다. 아마 미친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밤중에 그렇게 문을 두드리고 호러영화처럼 '나 너 보여~' 했으니 당연한 거겠지 ㅋㅋㅋ. 아무튼 그녀는 현재 나의 일본인 친구 '리나'이다. 아직도 가끔씩 전화해서 그때 고마웠다는 말을 10번은 반복하고 있다. 이제는 추억이 된 얘기지만, 휴대폰도 사용하지 못하고, 아는 사람은커녕,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낯선 외국 시골마을에서 너무나 무서웠던 외국에서의 첫날이었다. 나만큼 이상한 호주 워킹홀리데이 첫날을 보낸 사람이 또 있을까? ㅋㅋ 

 

고마워요 ^^ To be continued...

반응형